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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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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AtanasEbenezer 𝐖𝐈𝐍𝐓𝐄𝐑 𝐋𝐄𝐓𝐓𝐄𝐑 𝟐𝟎𝟐𝟐 2024. 3. 14. 23:26

01

 

아래는 복실의 합작글^^(허락받음)

감상하고가세요


 

深海

 

 

 

싸늘했다.

 

비단 기차 바깥으로 눈이 내리고 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아타나스 캠벨은 힐끗, 옆을 돌아보았다. 기차는 충분히 따뜻했고, 크리스마스를 끼워 연말까지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기쁨에 차 있었다. 그러나 유독 아타나스 캠벨과 에버니저 카이든 사이의 공기는 냉랭했는데, 시선 역시도 어긋나고 있었다. 아타나스 캠벨의 시선이 대체로 에버니저의 얼굴이나 그의 손끝, 혹은 예약해둔 호텔이 보내온 메일에 가 있었다면, 에버니저 카이든의 시선은 오로지 창밖만을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We wish you a merry Christmas···, 귓가로 신난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행복한 크리스마스라.

 

 

이탈리아의 겨울 바다로 떠나는 이 여행에 잘못한 사람은 없는데 미안한 사람만 있었다. 아타나스는 시선을 돌렸다.

 

 

 

*

 

 

 

사건의 발단은 큰일이 아니었다. 적어도 아타나스 캠벨에게는.

 

아타나스 캠벨과 에버니저 카이든은 함께 살기 시작한 이래로 매년 크리스마스와 신년을 잇는 일주일을 통째로 휴가로 썼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일주일만큼은 일을 빼자고 한 약속은 7년간 문제없이 지켜지고 있었고, 올해도 약속의 이행 자체에 문제는 없었다. 에버니저는 아타나스를 대신해 여행지와 호텔을 정했고, 둘이 함께 짐을 쌌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문제가 발생한 것은 에버니저가 여행 출발 이틀 전, 이변을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에버니저 카이든이 아타나스 캠벨의 생일을 잊었다.

 

 

아타나스 캠벨의 생일은 12월 31일로, 기억하기 쉬운 날짜이면서 동시에 기억하기 어려운 날짜이기도 했다. 1년의 마지막 날이라는 위명은 한낱 개인의 생일보다 당연히 앞서기 때문이었다. 물론 에버니저에게는 1년의 마지막 날이라는 이름보다 아타나스의 생일이라는 사실이 늘 앞섰었으나.

 

 

변명하자면 바빴다. 에버니저가 운영하는 베이커리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며 새로운 빵과 케이크를 출시했고, 신년을 기념하며 또 새로운 디저트가 나왔다. 가게를 총괄하는 입장으로서, 휴일이 시작하기 전의 가게는 그야말로 전쟁터였기 때문에 여행 준비 목록에 버젓이 케이크가 적혀있었으나 베이커리 주인의 머리 속에선 자연스럽게 그 케이크가 크리스마스 혹은 신년맞이 케이크로 치환되었다. 애초 목록을 작성할 때 생일 케이크로 적혀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아타나스는 제 생일에 관심이 없었고 에버니저는 아타나스의 생일을 잊을 리 없다고 자신했기에 일어난 에버니저만의 참사였다.

 

에버니저만의 참사인 것도 문제였다. 출발 이틀 전, 선물과 케이크를 모두 깜빡해 당황한 에버니저를 앞에 두고, 아타나스 캠벨은 도리어 무엇이 문제냐고 물은 것이 에버니저의 성질에 불을 질렀다.

 

 

- 이게 뭐가 문제냐고?

 

- ···그런 뜻이 아니라.

 

- 넌 화가 나지도 않아? 내가 네 생일도 잊은 채로 짐이나 싼 게.

 

- 에버니저도 바빴잖습니까.

 

- 그렇다고 그걸 괜찮다고···! ······됐어.

 

 

···이제 아타나스의 참사였다.

 

 

 

*

 

 

 

영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두 시간 반,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다시 기차를 타고 또 두 시간 반을 달리면, 눈에 감싸인 아름다운 바다가 있다. 관광지라고 하기에는 사람이 적고, 흔한 바다라고 하기에는 아름다운 곳. 사람이 많은 곳은 의식적으로 피하게 되는 둘에게 꼭 알맞은 장소. 바다 위에 눈이 나리고 파도가 일었다. 평소라면 호텔에 들러 짐을 내려놓고 해변이라도 거닐었겠으나, 둘은 말없이 호텔로 향했다. 예약해둔 방의 키를 들고 호텔의 상층으로 오르자, 둘 모두에게 참사가 벌어지기 전 주문했던 대로 웰컴 드링크 대신 와인이 놓이고 향초가 켜진 방이 둘을 반겼다. 싸늘하게 얼어붙은 둘의 분위기를 따졌을 때 방의 분위기는 죄악에 가까웠기에, 아타나스는 에버니저의 눈치를 보며 서둘러 향초를 껐다. 에버니저는 여전히 굳은 얼굴로 짐을 내려놓고 코트를 벗었다. 코트를 벗는 손길에 담긴 속상함이 눈으로 읽히는 것 같아, 아타나스가 옅게 숨을 쉬었다.

 

 

아타나스와 에버니저가 서로를 알아 온 지 10년이었다. 그저 알기만 하던 때까지 포함하면 14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으리라. 제 얼굴을 보는 것만큼이나 상대의 얼굴을 익숙하게 보며 자랐고, 서로의 세월을 함께 거닐었다. 그러니까 알기 쉽다. 에버니저는 화가 난 것이 아니라 속이 상한 것이고, 아타나스는 에버니저가 제 생일을 잊은 것이 문제가 없다고 한 게 아니라, 삶이 속도를 가할 때 잠시 저를 돌아보지 않아도 좋다는 뜻이라는 것을.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가끔은 안다는 것이 상처를 주기도 하지 않던가. 바로 지금처럼.

 

 

아타나스 캠벨은 에버니저가 침대에 걸터앉아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는 것을 보았다. 눈이 소스라니 오고 있었으나 하늘의 구름은 깨끗했다. 아마도 곧 눈이 그치고, 노을이 피어나게 될 것이다. 바다가 타오르듯 물드는 광경을 함께 볼 수 있는 것은 일 년 중 고작 이 일주일뿐. 그러니 이 시간을 놓칠 수는 없었다. 속이 상한 채로 시간을 그저 흘려보내기에는 그들이 가진 시간이 너무 짧았다. 우리는 알고 있으니까. 열한 시 오십 구분에서 자정이 되는 그 일 분 사이에 옆자리의 온기가 사라지는 일 따위를. 그러니 그를 놓치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아타나스 캠벨이 에버니저의 코트를 집어 들었다. 빛에 잠긴 우울한 녹빛 눈동자가 저를 돌아보는 것을 보며, 아타나스가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에버니저. 잠시 걸을까요. 단정한 목소리가 에버니저에게 손을 내민다. 우리는 서로를 거절하는 법을 알지 못하기에, 에버니저는 여전히 속이 상한 얼굴을 굳히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제게 다가오는 걸음을 가볍게 끌어당긴다. 손을 잡는다. 다시 코트를 입기 위해 옷자락을 잡아주다, 고개를 숙여 귓가에 잠시 이마를 댄다. 키스를 꼭 입술로 할 필요는 없으니까.

 

 

노을이 지려면 시간이 남았건만 햇빛이 옮은 듯 따뜻했다. 우리는 이 온기로 지난한 세월을 버텨왔다. 혼자가 아니라는 마음을 전하는 것은 백 마디의 말보다 손을 한 번 잡는 행동이 나았다. 이것은 습관이었고 우리가 삶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단 하나의 이유였다. 슬픔은 언제나 핏물에 젖어 있었고 지나온 시간은 시체처럼 차가웠음을 안다. 우리의 생生은 늘 바닷속에 갇힌 것처럼 시렸다. 그러나 그런 삶에도 우리가 바다로 떠날 수 있었던 것은, 온통 바다로 둘러싸인 땅에서 벗어나지 않아도 괜찮았던 것은, 시린 생生을 매만지며 비탄에 빠지지 않아도 되었던 것은 서로의 온기가 있었기 때문에.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 없이 이 바다를 거닐 수 없지만, 그럼에도 이 온기 하나만 있다면 모든 것이 괜찮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바다에 빠진 생生이었어도 서로의 손을 잡고 이끌며 결국 모래사장에 발을 딛고 서서. 바닷물이 발목을 적시지만 그를 딛고 걸어 나갈 수 있도록. 슬픔은 언제나 바다에 묻어버리고 앞을 똑바로 볼 수 있도록.

 

 

창밖으로 노을이 지고 있었다.

 

 

 

*

 

 

 

호텔을 빠져나오자 해는 이미 바다 뒷편으로 숨어버린 지 오래였다. 노을이 질 때 잠시 멈췄던 눈이 바다에 송이송이 떨어지고 있었다. 아타나스는 가만히 손을 뻗어, 에버니저의 옷매무새를 매만져주었다. 모래사장에 발이 스칠 때마다 사각거리며 모래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타나스 캠벨은 가끔 생각한다. 우리가 행복할 수 있을까. 내가 행복할 수 있는가. 그저 건조한 물음이었다. 불안과 불만에 쌓인 물음이 아닌, 삶을 되짚어보면 튀어 오르는 삭막한 생각. 적어도 나는, 이 삶 온전히 사랑하기엔 너무 많은 바다를 헤쳐 나오지 않았느냐고. 네 손을 잡기에는 내 손이 너무나도 차가워, 네 온기조차 빼앗는 것이 이 손이 아닌가, 하며. 혐오라기엔 건조하고 연민이라기엔 어설펐다. 아타나스 캠벨은 자신을 연민할 수 있는 이가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이 손에 언제나 잡히는 온기가 아타나스 캠벨의 면죄부가 된다. 살아가도 되는 생生임을 알려준다. 바다를 헤치고 나와, 다 젖은 발로 모래사장을 우두커니 밟고 서 있을 때면 뭍으로, 삶으로 이끌어주는 유일한 것. 그러므로 아타나스 캠벨에게 에버니저 카이든은 언제나 괜찮았다. 떠나지 않는다면, 옆에 머물러 준다면, 그리하여 사실 내가 영영 괜찮지 못하더라도,

 

 

영영 바다에 젖어 살더라도 네가 있다면.

 

 

"에버니저."

 

"···응."

 

"뭐가 문제냐고 물은 건 진심이었습니다."

 

"너 말이야···."

 

"아시잖습니까. 그냥 당신이, 저를 생각해주는 것만으로도 저는 괜찮으리라는 것을요."

 

"······그러니까 그게 문제잖아."

 

"당신이 미안해하는 것으로, 이미 선물을 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너 변태야?"

 

"그 미안함 만큼 저를 좋아하시잖습니까."

 

 

노을은 이미 졌는데도 귓가가 붉었다. 나지막한 웃음소리와 함께 아타나스가 뻗었던 손 그대로 에버니저의 귓불을 만지작거렸다. 차갑습니다. 단정한 목소리가 온기라도 나누어주듯 귓가를 간지럽히고, 그대로 손과 함께 내려왔다. 그리고 비어있던 에버니저의 손을 잡아끌었다. 한 발짝, 에버니저의 발 역시 모래사장 위를 밟는다. 사각거리는 소리가 울린다. 파도가 미처 쓸어가지 못한 소리가 둘을 에워싼다.

 

 

"선물은 괜찮습니다. 케이크도요."

 

"그냥 잊은 거 자체가 문제야."

 

"뭐 어떻습니까. 잊어도 바로 축하해 줄 수 있을 만큼 가까이 붙어있는데."

 

"그래도."

 

"그럼 오늘부터 제 생일까지 하루에 한 번씩 축하한다는 소리를 듣는 걸로 선물을 대신할까요."

 

"그런 게 선물이 돼?"

 

"에버니저가 해주는 거라면 뭐든···."

 

 

기껍지 않겠느냐고.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그 말을 막듯 모래 무너지는 소리가 커졌다. 에버니저가 보폭을 늘려 아타나스를 앞질러 가버린 것이다. 손이 잡혀 있어 아타나스를 두고 가진 못했지만, 순식간에 에버니저의 얼굴 대신 그 등을 보게 된 아타나스가 의아함에 고개를 기울이는 순간이었다.

 

 

"···생일 축하해."

 

 

눈앞에,

 

아타나스만의 노을이 있었다.

 

바다에 젖더라도 그 색을 잃지 않을 빛. 이 삶 영원히 심해深海에 처박힌다 하더라도 저를 이끌어줄 온기. 그리하여 영원히 저를 행복 속에 빠트려줄 단 하나의 생生. 그러니 당신이 무엇을 하든 어떻게 기껍지 않겠느냐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온 마음으로 증명해주는 이가 있는데, 어떻게 감히 불행할 수 있겠느냐고.

 

 

"······네."

 

 

당신이 나를 바다에서 건진다면, 나는 당신의 슬픔을 바다에 묻어줄게.

이 삶을 행복이라 부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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