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으로
  • 관리
  • 글쓰기
  • 방명록
  • 배너교환
  • 뒤로가기
05
08
01/34 CQD DE(@_CQDDE) 2024. 5. 8. 23:40

cqdcqdde.wixsite.com/cqd-de

Notice | Cqd De

WARINING < 유혈 및 부상, 인외 생명체의 묘사, 글리치 > ​ 일부 보는 이에 따라서 시각적으로 공포스럽거나 불편함과 불쾌감을 느낄 수 있는 요소가 포함되어있습니다. 감상에 유의해주시기 바랍

cqdcqdde.wixsite.com

 

 

 

 

Echo of Horizon

데미안 리스, 코델리아 노턴


 

 

데미안 리스의 장례식은 시체도 없이 열렸고,

그들의 고향별, 통칭 RN-34에는 그날도 온통 눈이 내렸다.

 

 

코델리아 노턴은 울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온통 흐린 구름이 끼어있는 대기 너머, 새까만 입을 벌리고 있을 그들의 터전인 우주는 사실 본래 그러한 곳이므로, 누구 하나 그런 죽음을 각오하지 않은 자가 없었던 까닭이다. 그들의 행성은 더군다나 겨울만 지속되는 혹독한 곳. 스스로 식량을 생산할 수 없으니 수공업이 발달했고, 그마저도 형편이 좋지 못해 살아남고 싶다면 반드시 우주로 향해야 하는 곳이다. 그러니 원망할 곳은 사실 어디에도 없다고. 텅 빈 관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었더란다.

 

 

 

*

 

 

 

깜빡, 깜빡. 기체에 불이 꺼졌다 켜지기를 반복한다. 옅은 분홍빛 눈이 무감한 얼굴로 새빨간 버튼 하나를 매만졌다.

 

 

메인 엔진은 이미 수명을 다했다. 보조 엔진의 동력을 끌어다 버티고 있지만, 이마저도 곧 동날 것이다. 눈앞, 새까만 공간에는 산발적으로 흩어진 은하가 반짝인다. 고요한 공간에 별들이 들어찬 이 순간은 코델리아 노턴이 광활한 우주를 누비며 보았던 무수한 풍경 중 가장 사랑하는 광경이었으나, 지금은 도저히 그런 말랑한 감상이 들지 않았다. 당연한 이야기다, 어느 누가 곧 제 무덤이 될 풍경을 보며 아름답다 하겠는가.

 

 

덜컹, 우주선이 부자연스럽게 멈춘다. 깜빡, 깜빡, 깜빡, 깜빡깜빡깜빡깜빡…, 외부에서 급작스레 주입되는 힘이 우주선에 에너지를 불어넣었다가, 되찾듯 그를 끌어당겼다. 새까만 공간을 빛으로 채우던 은하들 역시 그 색을 잃고 함께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코델리아 노턴은 흐무러지는 빛을 보며, 계속 매만지던 비상 탈출 버튼에서 손가락을 떼어냈다. 이제 삶과 죽음의 확률은 50 : 50이다. 광활한 우주, 그 우주를 채울 만큼 거대하고 다양한 지식들. 그러나 그러한 지식들조차 결코 가늠해내지 못한 최후의 미제(未濟)가 저를 끌어당기고 있었기 때문에.

 

 

 

*

 

 

 

지금으로부터 천년 전, 최후의 인류가 지구를 탈출한 이래 인류는 오래도록 그들의 고향별이었던 지구를 버리고 우주에 정착했다. 행성 단위로 거주지를 옮기는 것은 그 당시 발전된 과학 기술을 가지고 있었던 인류에게도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산소통 없이는 단 1분도 버틸 수 없는 대기와 오염된 바다가 주는 위협의 총량이, 시대가 버틸 수 있는 한계선을 넘자 그들도 도리는 없었다. 우주라는 미지가 인류에게 줄 고난이 지구에 남아 죽음의 위협에 시달리는 것보다 나으리라는 계산이 서자, 인류는 스스로 난민이 되길 택했다.

 

 

그렇게 지구라는 고향별을 잃고 우주로 떠밀리듯 도망친 지구인들은 더 이상 신을 믿지 않았다. 그들을 재앙에서 지켜주어야 할 신은 옷자락 하나 보이지 않았으나, 대신하여 삶을 지켜주었던 과학의 산물은 가까웠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들은 멸망 앞에서 자연스레 손에 닿는 과학을 신봉한 결과, 끝내 신을 과학으로 규정해 냈다. 그리고 그 규정에 비례하여 신을 잊어갔다. 산전수전 공중전, 더하여 우주전까지 겪은 인류에게 더 이상 남은 미지(未知)는 없노라고, 그렇게 오만하려던 순간이다.

 

 

우주 너머에서 ■■■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는 우주의 끝, '무덤'이라고 불리는 블랙홀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매 순간 팽창하는 우주에서 웬만한 블랙홀과 화이트홀은 이제 편리하지만 제법 흔들리는 이동 수단쯤으로 취급되곤 했다. 그러나 그런 우주 생물들에게조차 '무덤'이라 명명된 거대한 블랙홀 속에서 나타나는 그것은 신도, 생물도 아니었기에, 우주에 사는 존재들은 모두 입을 모아 그에게 새로운 종족을 부여했다. '괴이'.

 

 

그것의 이름을 알 수 있고 들을 수 있지만, 적거나 말할 때에는 모두가 다른 이름을 적고 듣게 되는 것을 평범한 생물이라 할 수 있겠는가. 또한 우주 어디에서든 조난된 우주선이 있다면 그 근처에서 불현듯 블랙홀과 함께 나타나, 제 터전에 생물을 끌여당겨 손아귀 위에서 놀리는 성질머리를 신이라 할 수 있겠는가? 그리하여 그것은 ■■■라 명명되었으며 괴이라 속칭되었다.

 

 

괴이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었으나, '무덤'에 이끌리고도 살아남은 존재들이 전해온 세 가지는 명확했다. 하나, 괴이는 조난된 우주선의 근처에 반드시 나타나니 주의할 것. 둘, 괴이의 손에 이끌린다면 그것을 보기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 셋, 그 괴이를 견딜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그의 호감을 사거나 흥미를 끌 것.

 

 

신도 생물도 되지 못한 괴이의 흥미를 끌 수 있다면 적어도 알량한 목숨 하나 부지해 오는 것은 일도 아니라는, 생존자들의 기묘할 정도로 고양된 문장. 그 문장들이 코델리아 노턴의 폐부에 박힌다.

 

 

호감을 사거나 흥미를 끌라고?

 

 

'무덤'에 이끌린 순간부터, 코델리아 노턴이 타고 있던 우주선은 블랙홀 내부의 압력에 의해 종잇장 찢기듯 찢어져버리고, 그는 맨 몸으로 블랙홀에 튕기듯 던져졌다. 사람이 작은 먼지만큼의 가치도 지니지 못하는 블랙홀 내부에서 코델리아 노턴이 아무런 보호구 없이 멀쩡히 살아있을 수 있는 이유는 눈앞에 등장한 괴이의 탓일 것이다. 눈이 마주친 순간부터, 두려움과 공포, 인간이 미지의 존재와 맞닥뜨렸을 때 당연하게 가져야 하는 감정이 눈 녹듯 사라진다. 코델리아 노턴은 치미는 역겨움을 참으며 제 옷자락에 매달려 있던 총을 꺼내 들었다.

 

 

 

괴이는 조난된 우주선의 곁에 반드시 나타난다.

 

코델리아 노턴과 데미안 리스는 RN-34 행성에서 태어난 단 둘 뿐인 피붙이였다. 혹독한 눈폭풍이 들이닥쳤던 어린 시절, 간신히 죽지 않고 살아남았던 유이한 생존자들. 의지할 곳은 오직 서로 뿐이었기에 역설적으로 그들은 헤어져 우주로 향했다. 자주 만나지 못하더라도 서로의 생사(生死)는 알아야 한다며 코델리아 노턴이 만들어냈던, 서로의 생체 칩을 인식하는 기계를 나눠 가진 채였다.

 

그랬기에, 코델리아 노턴은 그 누구보다도 먼저 데미안 리스의 죽음을 알아챘다. 서로의 생존을 초록색 불빛으로 조용히 알려주던 기계가, 사라지듯 꺼져버린 순간. 그의 조난 소식을 들었던 것은 그보다 더 나중의 일이었다. '무덤'으로 이끌려갔을 그와 그의 시체는, 코델리아 노턴 역시 '무덤'으로 들어가지 않는 한 찾을 수 없을 것이라는 냉정한 소리 역시도.

 

 

 

괴의의 손에 이끌린다면 그것을 보기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한다.

 

- 그 괴이는 '무덤'에서 잡아먹은 인간의 겉가죽을 쓴다더라.

-…….

- 그러니 코델리아, 만약 네가 '무덤'에 끌려가게 된다면.

 

 

 

그러나 이 괴이를 견딜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그의 호감을 사거나 흥미를 끌어야 한다.

 

- 그냥 그 '괴이'를 보기 전에 목숨을 끊어라.

- 아저씨.

-…….

- 전 조난될 생각 없어요. 데미안의 시체를 찾고 싶다는 불가능한 소망을 가지고 '무덤'에 스스로 뛰어들 일도 없을 거고요.

-……, 코델리아야.

- 그래도 걱정은 감사해요. 재수 없게 조난되면 아저씨가 조언해 주신 거 잊지 않을게요.

 

 

 

…그런 팔자 좋은 소릴 했던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기억은 눈앞에 선명한 얼굴 덕에 불쾌함조차 남지 않고 사라진다. 저보다 짙은 금색의 머리카락, 피처럼 붉은 눈동자. 사라진 생기 너머로 형형한 안광은 살아있는 사람의 것이 아니다. 저를 제 손바닥에 올려 둔 '괴이'의 것. 코델리아 노턴은 시선을 아래로 흘린다. 빛조차 사라지는 블랙홀에서 요요히 존재하는 붉은빛 두 개가, 검은 입가를 벌리며 웃는다. 다시 시선을 올리면, 그 검은 입가와 꼭 닮은 미소를 지은 데미안 리스가 있다.

 

 

 

코델리아 노턴은 이를 악 문다. 차가운 손가락이 총을 쥔 손목을 감싼다. 호감을 사라고. 호감을 사거나 흥미를 끌라고? 생존자들의 수칙을 통렬하게 비웃은 코델리아 노턴은, 차가운 손가락에 진저리를 치면서도 방아쇠에 손가락을 건다. 그럴 필요 없어 보이는데.

 

이 새끼가 데미안 리스의 겉가죽을 쓴 이상은.

 

 

 

“코, 델, 리, 아….”

“…….”

“함, 께, 있…자.”

 

 

 

그러니 생각하는 것이다.

정말 원망할 곳이 없었을까?

 

 

 

“야.”

“…….”

“데미안 리스는 그런 식으로 말 안 해.”

 

 

 

방아쇠가 망설임 없이 당겨진다.

괴이는 웃고 있었다.

'01 > 34'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장  (0) 2024.05.06
제마(@_je_ej)님  (0) 2024.05.06
불주먹(@memeCM____)님  (0) 2024.05.06
미년(@un_cms)님  (0) 2024.05.06
두부가게(@dubu_man)님  (0) 2024.05.06